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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가졌던 육체의 가시

바울은 전적으로 치료자이신 하나님께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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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비전
기사입력 2017-07-14

▲신경과전문의 배성호 박사.     © 크리스천비전

 

   현대의 많은 성경학자들은 실제 통증을 주는 만성 신체 질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체의 가시’를 희랍어로 ‘skolops te sarki’라고 하는데, 이는 육신에 가시가 꽂혀 있을 때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사람들은 바울이 가진 지병이 무엇이었느냐에 관해서 왈가왈부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간질이라고 했다. “환상을 보았다”, “계시를 보고 들었다”하는 바울의 신비 체험이 측 두뇌에서 발생하는 간질의 증상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간질 증상을 오랫동안 가진 환자는 종교성이 강해지고, 글을 많이 쓴 경향이 있을 수 있는데 바울의 신앙의 심도를 보거나 그가 신약 27권 중에 13권을 썼다는 사실들에 비춰볼 때 그가 이런 유의 간질을 앓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의 가시가 실제 가시처럼 통증을 주는 신체의 질환이라고 한다면 나의 견해로 이것은 간질이 아닐 것이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늘상 이런 환자들을 진료하는데 간질은 몸에 어떤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간질 발작이 자꾸 일어나면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남들에게 확연히 노출되기 때문에 심적인 고통이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바울이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발작하는 간질의 증상을 보였다는 힌트를 신약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안질을 앓았을 것이라고들 한다. 바울은 회심 당시에 강렬한 빛에 노출되어 삼 일간 보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이때 시력을 상당히 잃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갈라디아서 4장 13절-15절에 몸이 불편했던 때를 가리키면서 갈라디아의 성도들이 눈을 빼어 바울에게 줄 정도로 서로가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가졌음을 시사한 점이라든가 또 6장 11절에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라고 말한 것을 보아서 바울이 안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성 안질 중에 가시처럼 몸에 지속적으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은 없다. 갈라디아 4장 15절의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하는 말은 ‘다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라는 표현으로 당시에 널리 통용되었던 말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지난 번 방문 때에 바울의 몸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를 업신여기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에게 하신 것처럼 바울을 대접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생각이다. 또 갈라디아 6장 11절에 “큰 글자로 쓴 것”에 대해서는, 바울이 그의 대필자에게서 펜을 취하여 큰 글자로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외에도 육체의 가시에 대해 연구한 병명을 열거해 보면, 담석증, 나병, 통증, 난청, 말더듬, 브루셀로시스, 치아 질환 등이 있다. 심지어 몸에 이가 많았다는 추측도 있다. 말라리아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는데 그 당시 위생 상황이나 풍토를 생각할 때 이도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나에게 굳이 바울의 병명을 대라고 한다면 나는 만성 두통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성 두통 중 편두통의 한 종류일 수도 있고 또 두통 중에서도 가장 심한 통증을 주는 소위 클러스터 두통일 가능성도 많다고 하겠다. 편두통은 여성에게 많지만 클러스터 두통은 중년 남자에게 더 많다.

 

   매일 간헐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나기를 몇 개월 계속하다가 뚝 멈추고 한동안 지나서 다시 시작돼 매일 수개월 지속되는 것이 마치 포도송이 같다고 해서 ‘클러스터’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두통 중에서 제일 심한 것으로 손꼽힌다. 필자가 인턴 시작할 무렵에는 치료약이 제대로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심한 통증을 주는 질환이다.

 

   그러나 바울이 가졌던 육체의 가시가 어떤 질환이건 장애이건 간에 분명한 사실은 육체의 가시가 간헐적으로 바울을 괴롭히므로 복음전도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바울은 치유자 하나님에게 꼭 매달렸다는 것이다. 육체의 가시가 자기 몸을 찌를 때 그 고통에 시달리면서 바울은 하나님께 그것을 뽑아달라고 세 번 간구했다고 하였다. 이는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번 기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육체의 가시가 괴롭힐 때마다 그는 치유자 주님께 일정 기간을 정해 기도에 몰두했을 것으로 보인다. 며칠 아니 몇 주의 작정기도 기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주님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세 번째의 기도 기간 때에 주님에게 드디어 응답을 받았다. 자신의 연약함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리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때 그는 크게 기뻐했다고 하였다.

 

   육체 가시의 고통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받은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평강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길로 성큼 들어선 바울이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제 그는 완전한 치유를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서도 세상을 움직이는 성령의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인간의 몸이 영과 혼과 육을 다 담고 있는 이상, 신체적 병이든 영적 유혹이든, 아니면 외부의 박해와 핍박이든, 또 아니면 성적 충동의 집요한 유혹이든, 그 어는 것이든지 ‘육체의 가시’라는 것은 몸의 어디에 어떻게 꽂혀 있든 몸에 아픔을 계속 유발시키는 대상이라고 포괄적으로 생각함이 무난하다.

 

   그래서 성경에서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라고 특별하게 명시된 것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은혜스럽다. 육체의 가시가 어떤 특정한 병이었다면 그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바울의 처지에 동일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굳이 육체 가시의 정체를 명시 못하게 했는지 누가 알랴?

 

   이 세상에서의 삶에 육체의 가시가 주는 아픔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영적이든 , 심적이든, 신체적이든, 가시가 한 번도 박히지 않고 사는 인생은 없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육체 가시의 고통 속에 얽매여 허덕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자녀가 평안함 속에서 잘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뽑아주시거나 아니면, 육체에 가시가 그대로 있더라도 하늘의 평강을 허락하심으로 이를 치유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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