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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하라

옥합을 깨고 값비싼 향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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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비전
기사입력 2015-07-11

 

▲ LA전도대학 학감 및 주찬양교회 담임 진석호 목사.    © 크리스천비전


   베다니에 있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선 어디서든지 기념하고 기억 할 만 한 일이 벌어졌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죽으셔야하는 하나님의 때가 임박해옴에 따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에 숙소를 정하시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3킬로쯤 떨어진 베다니란 곳에 숙소를 정하시고 제자들과 더불어 임박한 죽음의 시간 곧 복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한 여인이 나타나 식사하는 자리에서 옥합을 깨고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우리는 흔히 기름 부은 종이란 호칭을 많이 사용하는데 주님께서 여인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라 여인이 주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세례 요한이 주님께 세례를 베풀면서 황송하게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더욱 황송하기 이를 때 없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각각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각각 다르게 베풀어졌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고 장례를 준비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를 준비하는 복음의 핵심을 쓸모없는 허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 바친 한 여인의 사랑과 헌신을 허비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교회 역사 가운데는 주님께서 헌신하고 생명까지 바친 사람들의 향기가 지난 2천년을 지속하고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낭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제자들은 그 여인의 행위를 비난하면서 가난한 자들 돕는다는 알량한 휴머니즘을 내세웠지만 주님은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을 이루려고 곧 죽으실 것이기 때문에 장례를 준비하는 그녀의 사랑과 헌신을 기꺼이 받으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기념물을 남기신 게 없지만 그녀의 행위만은 어디서든지 기념하라고 말씀 하셨다.  그녀는 어디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장례를 준비할 수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주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듭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분명하게 수난의 예고를 듣고서도 그것을 복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똑같이 복음을 들을지라도 듣는 사람들이 이해관계나 가치관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이해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들은 제자들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지만 주님과 제자들을 따라다니던 이 여인은 귀동냥으로 듣고서도 주님의 죽으심을 알고 장례를 준비했던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가까운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설령 베드로처럼 받아들이긴 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그걸 막아보겠다는 극히 자기중심적인 판단 때문에 주님의 장례를 준비할 수가 없었고 그가 우려하던 일이 다가오자 모두 도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갈보리까지 가서 십자가가 밑에서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보았고 아리마데 요셉이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르는 현장까지 가서 무덤을 확인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것처럼 말하던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 앞에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도망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영결예배나 발인예배나 하관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참석하지도 못했지만 여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의 현장도 보았고 죽음의 순간도 똑똑히 보았고 장례의 현장도 참여했었다.

  

   복음의 핵심이 되는 모든 현장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들은 부활의 현장으로 달려갈 수가 있었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여인들이 부활의 첫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우연의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복음이라면 이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전 생애를 빠짐없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복음의 진수를 모두 경험한 여인 중의 여인이었다. 

 

   그러기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마26;13).  그녀의 헌신은 복음의 핵심인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복음을 바꿀 수는 없다. 그 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자.  주님 앞에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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