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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의 사과와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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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비전
기사입력 2014-05-11

   나는 분노한다. 한쪽이 기울어져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며 놀랐다. 최초의 놀라움은 탑승자에 비해 적은 구조자의 숫자에 커졌다. 특히 사건 발생 후 드러난 세월호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무능과 무책임, 부패와 부도덕 등이 버무려진 내 조국의 민낯은 엉망진창이었다.
 
   끔찍해서 도저히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텔레비전에서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는 단 한 명의 실종자도 바다 속에서 구해오지 못했다.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았다. 희망의 속보에 매달려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거듭 좌절했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함, 억울함과 안타까움 등으로 크게 파도쳤다.
 
   내가 위험에 빠지면 국가가 나서서 구해주리라는 상식과 믿음은 무참하게 깨졌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번 사고의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그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비정치적인 사고가 정치적인 사건이 될 조짐이다.
 
   방송은 속도의 싸움이다. 같은 내용도 먼저 방송하는 쪽이 이긴다. 내용이 더 자극적일수록 시청자를 잡는다. 그래서 사지(死地)를 갓 벗어난 어린 학생들에게 방송국 카메라를 잔인하게 들이댔다. 피해자와 희생자의 입장과 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의 상처가 울음으로 크게 터질수록 방송은 널리 퍼질 것이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처사에 많은 시청자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대부분 변명만 해댔고,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딱 한 명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손석희 아나운서이다. 트윗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널리 퍼진 후에야 나는 그의 사과 방송을 보았다.
 
   그는 정갈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후배 앵커의 잘못에 대해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필요치 않다며, 그것은 선임자이자 책임자인 자신이 후배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감동했다. 날카롭던 분노는 다소 누그러졌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낯설었다.
 
   한 조직의 수장이 부하의 잘못으로 사과한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는 상사의 잘못을 대신 떠안고 희생당하는 부하의 모습이 훨씬 더 익숙해졌다. 

   MB정부 이후 굵직한 정치 사건들 대부분 말단 직원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만들어서 끝냈다. 그 일을 지시했을 윗선은 사법 처리는커녕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검찰 결과를 믿지 않았고, 불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책임자가 자신의 안위만 책임지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부하의 허물을, 그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진솔하게 말하는 손석희 아나운서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것이 원칙이자 상식이었던 시대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특히, 사건 당일 사망자의 예상 보험금을 재빨리 알려주는 극우 방송의 행태는 개탄스럽다. 희생자와 실종자의 가족은 물론 인간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이런 천박함에 대한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런 몰상식한 행태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불합리와 부당함 앞에 침묵했고, 연대는 깨어지고 개인은 고립되었다. 그 결과, 모든 사건은 사건의 당사자만의 싸움이 되었다. 여기에 중심을 잃은 몇몇 방송사는 큰 역할을 했다.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텔레비전은 독재자의 기관”이라며 “말대꾸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텔레비전은 여태껏 말대꾸를 못 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텔레비전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이미지를 왜곡, 조작하며 텔레비전에 거침없이 말대꾸했다.
 
   백남준으로 말미암아 독재자의 기관으로서 텔레비전의 권위는 무너져 내렸다. 이처럼, 어쩌면 우리가 국가와 권력에 말대꾸를 하지 않았던 것이 쌓여서 이런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지금은 마지막까지 우리 모두 희망을 갖자. 희망을 믿는 한, 기적은 일어난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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